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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의 고달팠던 삶..끝나지 않은 '김의 전쟁'

송고시간2010-03-26 09:57

재일교포 '차별 항의' 권희로씨 (자료사진)
재일교포 '차별 항의' 권희로씨 (자료사진)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 재일동포 차별에 항의하며 야쿠자를 살해하고 나서 무기형을 살다가 석방돼 고국의 품에 안긴 권희로씨가 향년 82세의 일기로 26일 부산에서 고달팠던 삶을 마감했다.

권씨는 1928년 11월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권명술씨와 박득숙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돼지사육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1934년 시미즈 소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도시락조차 싸가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친구는 물론 심지어 담임교사로부터도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다음해 어머니가 김종석씨와 재혼을 하면서 권씨는 의붓아버지의 성씨를 따르게 됐다.

방황하던 권씨는 소학교 5학년때 학교에서 쫓겨났고 12살때인 1940년에는 절도죄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권씨는 학업을 포기하고 여동생과 연탄회사에 취직했으나 온갖 차별의 벽에 부딪혀 적응하지 못하면서 금속회사와 부두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종전을 앞둔 1944년에는 가족과 함께 나카지마의 지하비행기지 건설공사에 징용되기도 했다.

소년보호원에 있던 중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었던 권씨는 뒤에 "당시 일본 천황은 울면서 말했고, 나도 울면서 방송을 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도 고국의 정세가 불안해 일본에 그대로 남았던 권씨는 1946년 절도죄와 횡령죄로, 1952년에는 총포불법소지 및 강도죄로 다시 형무소에 수용되는 불운한 인생을 이어갔다.

1959년 가토 가즈코씨와 결혼을 하고 1965년에는 카게가와에서 술집을 개업하는 등 한때 안정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단꿈'도 잠시. 1967년 부인과 헤어지고 의붓아버지의 자살 등으로 권씨의 삶은 다시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1968년 2월 20일. 시즈오카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금전문제로 야쿠자 두목 등과 다툼을 벌이다 "조센진, 더러운 돼지 새끼"라는 모욕적인 말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총살하기에 이르렀다.

이튿날 권씨는 한 여관을 점거해 투숙객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에 걸친 인질극을 벌였다.

당시 권씨는 신문과 TV 등을 통해 재일동포 차별문제를 호소하기도 했으나 24일 체포돼 그해 11월 6일 시즈오카 구치소에 수감됐다.

첫 재판때부터 법정에 서기를 거부하는 등 기소 이후에도 재일동포의 차별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1975년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구마모토 형무소로 이감되는 등 1999년 9월 귀국하기까지 총 31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당시 범행에 사용했던 탄창과 탄피는 '차별에 대한 항의의 상징'이라며 국내로 갖고 와 후견인인 삼중 스님을 통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런 권씨의 기구한 삶은 1992년 한진흥업이라는 영화사에서 '김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 국내에 알려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pc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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