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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송고시간2010-03-29 07:30

<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파주=연합뉴스) 최우정 기자 = 한국전쟁 당시 1사단 15연대 기관총 반장으로 낙동강 후퇴와 서울 수복, 압록강 진격 등 북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치열한 전투를 겪은 박만희(82)씨. 2010.3.29
friendship@yna.co.kr

"기막히고 환장할 일, 안타까운 비극의 역사"

(파주=연합뉴스) 최우정 기자 = "같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고 마구 쏘아댔으니 정말 기가 막히고 환장할 일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1사단 15연대 기관총 반장(1등 중사)이었던 박만희(82)씨에게 전쟁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박씨는 낙동강 후퇴와 서울 수복, 압록강 진격, 1.4 후퇴 등 북이 남침하면서 휴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겪은 한국전쟁의 산 증인이다.

박씨는 1948년 10월 여수.순천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국방경비대 13연대 소속으로 진압 작전을 벌이다 5사단 20연대에 편입돼 정식 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영문도 모른 채"..서울행 열차 = 박씨는 1950년 6월25일 저녁 전남 광주 송정역에서 이유도 모른 채 열차에 올라탔다.

당시 20연대장이었던 박기병 대령은 사병들에게 "해당 열차는 서울로 간다"는 말만 할 뿐 다른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박씨는 "3.8선 경계근무를 교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줄 알았다"라며 "공비 토벌이니 뭐니 해서 지겨웠던 터라 잘됐다고 생각했다"라고 기억했다.

열차는 서울을 거쳐 26일 새벽 경기도 파주 문산에 도착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문산역에 내려 실탄을 보급받고 호를 파 들어가 무전기를 켰는데, 1사단장의 작전 지시가 수없이 오고 가더라고요".

영상 기사 <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기막히고 환장할 일, 안타까운 비극의 역사"

<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기막히고 환장할 일, 안타까운 비극의 역사"

박씨는 그때야 비로소 3.8선 근무를 교대한 게 아니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대비로 호 곳곳이 잠기며 다른 호를 파려던 순간 총성과 함께 '후퇴'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문산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시간이 안 된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수원까지 계속 후퇴했습니다. 총 한번 쏘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후방으로 밀려 사실 인민군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습니다".

◇'숙명'..1사단 기관총반장 = 후퇴를 거듭해 수원 인근에 도착한 부대는 풍비박산이 났다. 부대원 5명과 함께 남은 박씨는 1사단 15연대에 배속됐다.

박씨는 한 번에 250발 발사할 수 있는 기관총 4대를 담당하는 기관총 반장 임무를 맡았다.

박씨는 인민군들이 눈앞에 보이건 안보이건 상관없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내가 쏘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죽일 테니 방아쇠를 마구 당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죠".

부대는 대전, 대구, 경부선 라인을 따라 인민군과 교전을 거듭하며 그 해 9월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 워낙 정신없이 후퇴해 어느 지역을 거쳐 갔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며 그는 몸서리쳤다.

박씨는 "한 때는 친구였고 이웃이었던 사람들과 서로 목숨을 내놓고 싸웠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어도 그냥 지나갔다는 말을 전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머리카락 길이로 인민군, 중공군과 국군을 구분했다고 박씨는 전했다.

"국군은 장교뿐 아니라 사병들도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길었어요. 반면 중공군과 북한군은 머리카락이 짧았죠".

그는 "상대를 마주치면 일단 머리를 잡아봤다"며 "머리카락이 짧은 사람이 있으면 인민군인 줄 알고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

◇압록강 후퇴..부상, 그리고 임관 =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박씨가 속한 1사단은 같은 달 28일 서울을 수복했다.

박씨는 "트럭을 타고 전진 또 전진해서 서울을 되찾고 평양도 먼저 점령해 태극기를 꽂았다"며 "모두 무척이나 감격스럽게 생각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나의 6.25> 1사단 기관총반장 박만희씨

(파주=연합뉴스) 최우정 기자 = 한국전쟁 당시 1사단 15연대 기관총 반장으로 낙동강 후퇴와 서울 수복, 압록강 진격 등 북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치열한 전투를 겪은 박만희(82)씨. 20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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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와 1사단은 신의주 바로 밑 운산까지 진격해 압록강을 목전에 두고 통한의 후퇴를 했다.

박씨와 전우들이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서 먹자는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라며 "이 지겨운 전쟁을 또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러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공군 때문에 통일을 못 하고 전쟁이 이어진 사실에 대해선 지금도 분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당시 중공군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 때문에 전쟁이 계속됐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라며 "중공군 포로수용소를 지날 때면 돌멩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던 1952년 10월 연천에서 철조망을 넘다 철사가 목과 손을 관통하는 등 크게 다쳤다.

그는 "당시에는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경주 육군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은 박씨는 갑종간부 후보생에 지원해 1954년 15사단 50연대 작전장교 보좌관으로 장교 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하다가 1963년 3월 중위로 예편하며 15년간 파란만장했던 군 생활을 마감했다.

◇"한국전쟁은 역사의 비극" = 박씨는 서울을 수복하던 순간에도 기뻐 만 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인민군들이 논바닥에서 새까맣게 기어올라오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쪽 사람들이나 우리나 부모들이 귀하게 길러놓았을 텐데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박씨는 특히 "한국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눈 우리 역사의 비극"이라며 "어쩔 수 없이 서로 죽인 6.25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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