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범죄 연구로 사회안전망 구축해야"(종합)
송고시간2010-03-11 11:46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부산 여중생 이모 양 납치살인 피의자인 김길태가 검거될 당시 소지하고 있던 물품. 경찰은 11일 사상경찰서에서 김길태가 경찰에 붙잡힐 때 갖고 있던 17점의 물품(현금 24만2천500원, 십자형 드라이버, 면장갑, 비닐장갑, 털장잡, 면도기, 손목시계 등)을 공개했다. 경찰은 김이 도피기간 추가범행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지방기사 참고 >> 20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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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김길태 성폭력 막을 수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부산 여중생 살인 피의자 김길태 검거를 계기로 더는 흉악범죄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회적 차원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범죄 전문가들은 끔찍한 성폭력 범죄 등을 막으려면 형사처벌 등과 같은 사후조치보다 범죄가 나올 확률이 높은 지역에 CCTV를 설치하고 예방을 위한 체계적 범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회안전망 확충, 프로파일링 활성화해야" = 전문가들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특정 인물의 반복범죄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그 결과를 프로파일링 시스템 개선과 사회안전망 확충에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통계·조사센터장 김은경(범죄사회학) 박사는 11일 "벌어진 사건을 놓고 처벌에 대한 사후대응을 논의하기 전에 예방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체계적으로 범죄가 관리됐다면 범인을 추적해서 잡기가 좀더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이번 김길태 사건을 차분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사이코패스로 판명이 나면 다 끝나는 듯 얘기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서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 성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끝내선 안 되고, 그 범죄자의 심리분석, 행동특성 등을 연구해 그 결과를 토대로 실질적인 성폭력 범죄 예방책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특히 "강력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범죄 사례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축적돼야 한다"며 범죄 심리ㆍ행동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링 제도의 활성화와 개선 방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로파일링 시스템이 구축되면 몇 가지 범죄 행동 특성을 데이터베이스(DB)에 입력할 경우 기존 사례를 토대로 범죄 대상군을 좁힐 수 있어 살인, 방화 등 행적이 특성화되는 범죄에서도 용의자 추적이 더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하지만 우리나라에 프로파일링 DB 시스템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료를 잘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적 기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비슷한 제안을 내놨다.
황 교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의 심리와 행동 패턴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패턴을 통해 범죄문제를 추적하고 연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과거의 범죄패턴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높고 인간의 행동도 습관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황 교수는 "우리 경찰의 프로파일러는 개인들의 경험 상을 토대로 (분석ㆍ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를 통해 프로파일러가 양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또 프로파일러가 혼자 활동하면 개인적인 편견이나 주관적인 생각이 작동해 왜곡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로파일러가 활약하려면 적어도 3~4명으로 팀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전국적으로 커버할 수 있는 프로파일러 팀이 운영돼야 한다. 그러면 관할다툼을 하지 않고 다양한 범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고 DB도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은 = 박지선 경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사회안전망 확충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박 교수는 "성범죄자를 일대일 관리하고, 법률이나 처벌의 사각지대에 있는 범죄자들까지 모두 관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제안하고,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장소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우범지역의 범죄율이 낮아지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길태의 범행 목적은 성폭행인데 보호관찰 아래 있었다면 살인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호순은 범행이 반복되는데 반해 김길태는 예방하려면 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뿐 아니라 사회의 인식 전환,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범죄 재범 방지를 위해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 등 제도적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며 "지역사회와 경찰, 부모가 지속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도 "모든 사회나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고 그 사람에 대해서만 문제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보다는 사회 전체적으로 문제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영희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위험을 예방하는 전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또 여성과 어린이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선에서 비롯되는 범죄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교육도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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