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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다녀온 죄" 근로정신대 자매의 恨>

호소하는 근로정신대
호소하는 근로정신대(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26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정주(오른쪽부터),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가 후생연금 99엔에 대한 협상 대신 직접 보상을 추진하겠다는 외교부의 방침에 대해 분노하며 정당한 보상을 호소하고 있다. 2010.1.26
zjin@yna.co.kr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어릴 때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해방을 맞아 고향에 돌아왔지만 근로정신대라는 꼬리표로 한 맺힌 삶을 살아야 했던 어느 자매의 기구한 삶이 알려져 주위를 애처롭게 하고 있다.

비운의 주인공은 김성주(82), 정주(80) 할머니 자매.

1944년 5월, 중학교에 진학시켜주겠다는 일본인 교사의 말에 속아 언니인 김성주 할머니가 친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자매의 운명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타계한데다 아버지마저 경남 진해의 공사장에서 강제노역 하느라 집안이 엉망이 돼버린 현실에서 김 할머니에게 중학교 진학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그의 일본 생활은 기대와는 달리 나고야(名古屋)에 있는 군수공장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배치돼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손가락이 절단되고 다리를 다치는 모진 고초를 겪었다.

자매에게 닥친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2월 김 할머니에게 "일본인 교사의 말에 속아 일본 도야마(富山) 후지코시(不二越) 군수공장에 있다"는 동생 정주씨의 편지가 전달된다. 믿고 의지하던 언니가 일본으로 떠나자 언니를 볼 수 있다는 일본인 교사의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 왔다는 하소연이 담겨있었다.

호소하는 근로정신대
호소하는 근로정신대(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26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정주(오른쪽부터),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가 후생연금 99엔에 대한 협상 대신 직접 보상을 추진하겠다는 외교부의 방침에 대해 분노하며 정당한 보상을 호소하고 있다. 2010.1.26
zjin@yna.co.kr

결국 자매는 일본에서 온갖 차별과 멸시속에 배고픔을 참아가며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했다.

그러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찾아왔고 자매는 함께 고향인 전남 순천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정신대 출신에 대한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 속에 징용 사실을 철저하게 숨겨야했고 1947년 김성주 할머니는 결혼을 하고 광주로 떠났다.

하지만 정신대 출신임을 알게된 남편의 폭행으로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이 이어졌고 1962년 남편이 병으로 죽자 홀로 3남매를 키우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동생 김정주 할머니의 삶도 언니와 다르지 않았다. 1949년 결혼했지만 같은 이유로 남편의 폭력이 이어졌고 서른 다섯의 나이로 이혼을 하고 외아들과 서울에서 모진 삶을 견디며 살았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 남은 것은 가난과 병마뿐이지만 이들 자매는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함께 뛰고 있다.

김성주 할머니를 포함한 근로정신대 출신 7명은 1999년 미쓰비시를 상대로, 김정주 할머니 등 23명은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김정주 할머니는 28일 "아들에게는 최근까지도 숨기고 살아야했다"며 "언니나 나나 일본에 다녀왔기 때문에 신세가 이렇게 됐다. 죄라면 일본에 다녀온 것뿐인데.."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cbebop@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0/02/28 09: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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