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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곡예단' 84년 풍상 끝에 역사속으로>

<`1호 곡예단' 84년 풍상 끝에 역사속으로>
동춘서커스단 해체…TV에 관객 빼앗기며 쇠락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한국 곡예단 1호'인 동춘서커스단(단장 박세환)이 84년 역사 동안 숱한 굴곡을 겪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았다.

허장강과 이주일 등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와 희극인을 낳은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1970년대 TV 문화에 관객을 빼앗기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전통적인 천막 공연 방식을 벗어나 백화점과 축제 현장으로 나서 젊은 취향을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작년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했다.

서커스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춘은 1925년 일본 서커스단을 탈퇴한 박동수 선생(호 동춘)이 조선인 출신 연예인들 30여명을 모아 결성했다.

정통적인 곡예 외에 국악과 풍물놀이,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가 최전성기였다. 연예인 양성 기관이 제대로 없던 때 당대 최고의 희극인, 가수, 배우들이 모이는 연예계 1번지로 이름을 날렸다.

동춘의 마지막 단장인 박세환 씨가 노래와 연기를 아우르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꿈을 안고 입단한 것도 이 시기다.

하지만, 1970년대 TV 브라운관의 득세는 일취월장하던 서커스단의 운명을 바꿔놨다. 퇴근 후 저녁 드라마를 보는 것이 유행되면서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당시 18개나 됐던 국내 서커스단이 5개로 줄어드는 등 TV의 위력 앞에 맥없이 주저앉았고, 동춘은 이후 다시는 예전의 인기를 되찾지 못했다.

동춘이 전통적인 천막 공연에서 벗어나 백화점과 기업 행사, 지방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며 관객 다변화에 나서는 등 재기의 몸부림을 치기도 했으나 매번 허사였다. 젊은 층을 노려 비보이(B-Boy) 공연을 선보이고 뮤지컬과의 혼합 장르를 추진했지만 이런 노력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박 단장이 정부에 "서커스 예술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기금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몇번의 논의 끝에 결국 무산됐다.

설상가상으로 악재까지 겹쳤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천막과 공연장비가 모두 부서졌고 작년 금융위기로 근근이 이어지던 관객이 뚝 끊겨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사실상 휴업했다.

작년 말 포털 다음(Daum)에서 딱한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이 "동춘을 한국판 '태양의 서커스(캐나다의 예술 서커스)'로 키우자'며 온라인 모금 운동을 벌였지만, 대세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빚이 3∼4억원 대로 불어났고 올해 신종플루가 유행하면서 그나마 수익이 되던 지방 축제 및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금융기관들은 모두 추가 대출을 거부했다.

동춘서커스단 관계자는 "이 이상 현실적으로 조직을 유지할 수 없다. 언젠가 단원들을 모아 공연을 다시 할 생각도 있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당장 얘기할 수 없다"라며 암울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ta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9/10/21 16:2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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