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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ㆍ박은옥 "전근대성이 창작 제한"

송고시간2009-09-28 20:00

정태춘ㆍ박은옥 "전근대성이 창작 제한"
30주년 공연, "사전검열과 싸울때 음악 그만두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1978년 데뷔 이래, 초창기 정태춘(55)은 자연과 세상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었다.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등 때로 박은옥(52)의 목소리가 곁들여진 그의 노래는 관조적인 서정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정태춘은 약자의 편에 서서 현실을 적극적으로 대입하기 시작했다.

한편의 서사시 같은 5집 '아, 대한민국'(1990년), 6집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년)는 그가 사회 약자를 대변하는 투사가 된 분수령이다.

게다가 그는 사전심의에 반기를 들어 이 음반들을 비합법 테이프로 발매했고, 그 싸움은 1996년 사전심의제가 철폐되며 끝났다. 그 때문에 정태춘은 저항 가수, 문화 운동 투사라는 꼬리표를 굳혔다.

정태춘과, 음악 동지이자 아내인 박은옥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이들의 음악사적,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배우 명계남, 문성근, 가수 강산에, 윤도현, 영화감독 정지영 등 각계 인사 100명이 기념사업 추진단을 만들었다.

이들의 지원으로 10월27일-11월1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30주년 기념 공연-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개최하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와 28일 마포구 다음기획 사무실에서 만났다. 언론과는 5년 만의 인터뷰라는 부부는 서로 답변에 귀 기울이다가 반기를 들기도, 살갑게 거들기도 했다.

정태춘ㆍ박은옥 "전근대성이 창작 제한" - 2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정태춘은 30년의 소회를 묻자 "과분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이어 지내온 시간 동안 음악에 담긴 메시지의 뚜렷한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1980년 박은옥과의 결혼, 그보다 중요한 건 요동친 사회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제 일기를 쓴 거죠. 1980년대 들어서는 격변하는 사회에서 세상 약자의 처지를 생각하며 삶과 세상을 담아낸거죠. 이 상황에 있는 나,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는 내가 나만의 방식을 택한거죠."(정태춘, 이하 정)

그러자 박은옥은 "결혼하고 딸 하나를 낳으며 이 사람은 비로소 개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상황에 눈을 돌렸다"며 "이때부터 사회적인 일기를 노래했다. 이상의 세계를 살던 20대 청년에서 이 땅을 딛고 사는 생활인이 되면서 그 토양을 바꾸려 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2002년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정태춘은 더는 곡을 쓰지 않았다. 10집은 마지막으로 진정성이 들어간 음반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후 TV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고 노래도 만들지 않았다.

"문명의 질주에 동승하고 싶지 않아 뛰어내린 거죠. 재편된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 문화 지형에 편입되고 싶지 않아 제 역할을 포기했어요. 또 제 분노에 비해 나이가 들었고, 절망에 비해 열정이 떨어졌죠."(정)

"아니, 결코 이 사람의 열정이 떨어진 건 아니에요. 자본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드는 게 최선인 사회에 절망을 느꼈을 뿐이죠. 이 사람에게 노래는 소통이고 대화인데, 여전히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죠."(박은옥, 이하 박)

박은옥은 자칫 곡해될까 의미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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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태춘은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콘서트를 열었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 봉하마을 추모문화제에서 노래했다.

뜻밖에도 그는 일련의 무대가 사적인 소회를 가진 자리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더는 운동으로서의 활동은 없다고도 했다.

"대추리 싸움은 이전 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싸움이 아니에요. 대추리는 제 고향의 논과 들판이죠. 이 마을은 제 유년기 서정의 우물이에요. 제가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헌신이었기에 사적인 실천이었죠."(정)

이어 그는 "노 전 대통령 추모문화제 참여는 정치적인 연대감 때문이 아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 전부터 사적인 친분이 있었기에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했다. 나는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을 지지했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박은옥은 "사전검열 철폐 운동 당시 노 전 대통령, 천정배 의원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줬다"며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의 천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소개해줬다"고 덧붙였다.

자연스레, 얘기는 사전심의제 철폐 운동 당시로 흘렀다. 그는 정권의 압력 때문보다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 때문에 창작과 상상력이 제한받은 것이며 자신은 그런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했다.

"1978년 첫 음반부터 1990년까지 줄곧 정부 검열에 걸렸죠. 공연윤리위원회 지시로 노래를 개사해야 했죠. '아, 대한민국' 음반 때 비합법 테이프를 발매했는데 정부에서 못 본 척했어요. 그다음 음반까지 같은 방식을 택하자, 정부는 전국에 음반 회수 공문을 보냈죠. 검찰에서 기소했고 재판에 회부됐어요. 1995년 사전검열의 위헌 결정이 났고, 1996년 법 개정이 이뤄졌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여겼는데 이긴 겁니다."

"표현의 자유는 듣는 사람의 자유이기도 하다"는 부부는 "당시 예술인들의 동조와 지원도 있었지만 이 싸움은 격리된 상황처럼 느껴졌다"며 "6년간 싸움이 지속되면서,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여전히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 수준은 검열이 존재한 시대보다 나아지진 않았지만"이라고 말을 흐렸다.

인터뷰 내내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칭한 정태춘은 자신의 음악을 역사책의 객관적인 사실처럼 들여다보지만, 후대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명사는 '메인 스트림'에서 선별한 것만 남고 기억되니 자신처럼 이단적인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것은 지워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30주년 공연을 여는 것은 그간 아껴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 사은회를 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많이 알려진 노래를 들려주고, 근래에 쓴 시들과 직접 찍은 사진을 공개할 계획이다.

정태춘은 "사진에도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담겼다"며 "내가 어떤 것에 연민을 느끼고 분노하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10월28일-11월3일 정동 경향갤러리에서는 부부의 음악을 사랑하는 화가들이 모여 '정태춘 박은옥 트리뷰트 미술 전시회'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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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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