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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 지켜본 '평생기자' 김성진

송고시간2009-09-17 14:07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성진 전 문공부 장관(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성진 전 문공부 장관(자료사진)

76년 문화공보부를 초도순시한 박정희 대통령을 안내하는 김성진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17일 타계한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은 격동 현대사를 현장에서 목도한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현장 뉴스를 시시각각 타전하는 통신 기자로 출발, 박정희 정부의 대변자를 거쳐 20세기 한국정치를 생생하게 기술한 글을 남길 때까지 한평생 펜과 원고지를 놓지 않았던 타고난 언론인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박정희의 입'으로 불릴 만큼 박 전 대통령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1970년 동양통신 정치부장으로 재직할 때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된 뒤로 청와대 공보수석과 대변인에 이어 79년 박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을 맞고 서거할 때까지 박 전 대통령과 지근거리에서 정권 핵심의 의중을 집약해 국민에게 전달하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10월27일 오전 7시20분, 그가 정부 대변인 자격으로 국민 앞에 나서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는 발표문을 눈물로 읽어내려갔던 모습은 장년층에게는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10.26 이후 김 전 장관은 동양통신에 이어 연합뉴스의 전신인 연합통신 사장으로서 언론계에 복귀한 뒤로, 9년간 삶의 궤적을 함께 했던 박정희 시대의 진실을 알리는 데 힘썼다.

2006년 8월에 펴낸 `박정희를 말하다'에서 그는 10.26 사태를 "이후락, 김재규, 차지철, 박종규 등 과잉 충성분자들이 2인자 자리를 노리고 선택한 강경노선이 끝내 암살까지 이어진 것"으로 정의했고,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진보 10년과 보수가 맞선 2007년 대선을 "박정희를 평가하는 종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자 박정희에 대해서는 `독재자', `반(反) 민주주의자'이자 `자주, 자립, 자위, 자강, 자존주의자'로 기록할 만큼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과 냉정을 잃지 않았다. 평생 기자로서 언론과 문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연합통신 초대 사장으로 83년까지 4년간 재임하면서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서울언론재단 이사장, 한국국제문화협회 회장, 아시아공연예술진흥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언론 발전에 앞장섰다.

문화계에서는 특히 문공부 장관 시절 박 대통령의 숙원사업이었던 고적 발굴 등 문화재 복원을 주도해 고전문화 계승과 창달에 기여한 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문공부 장관 시절 역사 유적 보수와 정화사업 등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을 진두지휘했다.

아울러 싱가포르 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관으로서도 수완을 발휘해 세네갈과 가봉공화국으로부터도 대훈장을 받기도 했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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