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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濠노동당 위안부 결의안 왜 반대했나>

<濠노동당 위안부 결의안 왜 반대했나>
野시절 '전원 찬성'..정치이해로 `변절'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지난달 19일에 호주 상원에 재상정됐던 `위안부 결의안'이 집권당인 노동당의 반대로 부결되자 동포사회에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노동당의 반대는 야당시절 `전원 찬성'에서 집권 이후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어서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결의안은 호주 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해 위안부 유린에 따른 전적인 책임 인정과 범죄행위에 대한 공식사과, 피해자나 직계가족에 대한 보상, 위안부에 대한 학교의 올바른 역사교육을 촉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결의안은 녹색당 핸슨-영 의원 발의로 상정돼 표결 끝에 찬성 7, 반대 37의 압도적인 표차(기권 32표)로 부결됐다. 찬성표는 녹색당 의원 5명과 가족제일당 의원 1명, 무소속 의원 1명 등이 던진 반면 노동당 20명, 자유당 15명, 국민당 2명이 반대했다. 노동당 12명과 자유당 17명, 국민당 2명, 지방자유당 1명은 기권을 했다.

노동당은 일본 측의 1951년 평화조약과 1993년 당시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 등 하워드 정부가 거론했던 반대이유에다 민간인들의 국가상대 제소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추가해 `적극 반대'로 나섰다.

1일 인터넷매체인 `호주온라인뉴스'는 "그동안 존 하워드 전 총리의 인권문제 처리방식에 비판의 날을 세웠던 노동당이 집권 후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원칙도 없이 정치적 이해와 실용주의적 판단에 따라 `대변절'하는 촌극을 연출했다"고 비난했다.

호주한국신문 김인구 편집장은 "수정안을 낼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일본 선거가 끝난 9월에 발의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성급했다는 평가가 있다"며 "아무튼 노동당이 야당일 때와는 달리 지나치게 일본을 의식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민주당 의원이 노동당 의원에게 8월 말 선거에서 승리하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노동당이 향후 양국 관계를 고려해 `반대'를 한 것같다"고 덧붙였다.

호주 상원에 위안부 결의안이 처음 상정된 것은 2006년 8월 9일 민주당 스토트 데스포야 의원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중대한 인권유린에 대해 사과 또는 공식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은 표결에서 부결됐다.

녹색당 케리 네틀 의원은 2007년 2월 28일 호주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조건 없는 공식사과와 배상시스템 확립, 학교의 올바른 역사교육을 촉구하도록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해 재상정했다. 이 결의안은 당시 노동당과 민주당, 가족제일당 등 야당이 모두 합세해 찬성했지만 여당(자유-국민당 연합)의 반대에 부딪혀 또 좌절됐다.

연방선거를 앞둔 2007년 9월 19일에는 노동당 페니 웡 의원(현 기후변화장관)의 주도로 민주당 데스포야 의원과 녹색당 네틀 의원 등 여성의원 3인이 내용이 비슷한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으나 찬성 34표, 반대 35표로 역시 부결됐다. 웡 의원은 당시 "결의안 통과를 위해 한인사회가 자유당 의원 설득에 나서달라"고 당부하기도했다.

당시 자유당은 "일본이 1930년대와 1940년대 행위를 인정하고 속죄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온 조치들을 치하하며 위안부 문제 등 자국의 전(全) 역사를 인정하는 추가 조치를 취하도록 독려한다"는 내용의 극히 파행적인 결의안을 상정해 물의를 빚었다.

다시 민주당은 수정안을 냈지만 또 부결됐고, 이후 노동당은 자유당의 '물타기' 결의안을 지지, 통과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9/09/01 15:3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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