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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 스님들, 저마다 집짓고 산문 나섰다

송고시간2009-08-05 08:57

<하안거 스님들, 저마다 집짓고 산문 나섰다>
전국 95개 선원에서 2천237명 하안거 해제

(문경=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소백산맥 죽령 서남쪽 사불산(四佛山) 기슭, 울창한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 해발 600m 산마루에서 대승사(大乘寺ㆍ경북 문경시 산북면)를 만난다.

한여름 아침햇살이 내리쬐는 5일 오전 7시. 대승사 경내 대승선원 문이 열리고 스님들이 하나둘 섬돌 아래로 내려선다. 음력 4월15일부터 이날까지 3개월간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스님들은 어떤 깨달음을 얻고 산문 밖을 나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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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전 안거를 시작할 때의 각오와 다짐을 안거를 마치는 오늘 되돌아보면서 아쉬움과 좌절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마다 나름의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틀린 집이든, 옳은 집이든 말이죠"

대승선원의 선원장인 대승사 주지 철산(鐵山)스님(54)은 걸망을 지고 일주문을 지나 다시 만행길에 오르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한 철만 공부하면 자신이 득도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양식은 그것으로 다 벌었다고 믿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각자에게 끊임없이 묻고 탁마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까'하고 선각자들에게 묻고, 또 묻고 들어야합니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 사면(四面)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세웠다는 창건기가 전해지는 고찰이다.

대웅전 옆에 자리잡은 대승선원은 맵디매운 수행 가풍으로 여러 큰스님과 인연을 맺은 곳이다. 청담, 성철, 우봉, 서암, 자운 스님 등이 1944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함께 수행했고, 성철스님은 당시 3년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을 하고 전쟁 때는 인근 토굴에서 정진했다. 대승사의 수행가풍 덕인지 대승사에서 고시공부를 한 고시생 중 합격자가 300여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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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선원의 하안거 시간표는 속세 사람들의 짐작을 넘어선다. 새벽 2시15분에 예불을 시작해 최소한의 공양시간과 해우소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14-15시간을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면서 잠은 3시간 정도만 자는 가행정진이다.

선원장 철산스님의 일과는 이보다 더한 고행으로 24시간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 가깝다. 철산스님은 "자정 지나서 잠들어 새벽 1시30분에 일어난다"고 말하지만 피부와 눈빛은 티없이 맑다.

스님은 "이곳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은 자신이 원해서 온 사람들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은 고생이 아니다"라며 "3.7일(21일)동안 잠 한 숨 안 자도 잠을 많이 잔 사람들보다 더 생생하고 눈빛이 반짝반짝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잠도 안 오고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는 상태가 돼지요. 선(禪)이라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몇 번 죽었다 깨어나는 것이죠. 잠 잘 때는 너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깨어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본래 마음자리, 중도(中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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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안거에는 비구계를 갓 받은 스님부터 법랍이 30년을 훌쩍 넘긴 스님까지 선원의 큰방에 27명, 암자 2곳에 1명씩 모두 29명이 결제에 들어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해제까지 이르렀다. 스님들은 '무(無)'나 '이뭐꼬' 등 다양한 화두를 들고 진정한 깨우침을 향해 씨름했다.

철산스님은 "공안(화두)이 1천700여가지가 있다고 하지만 약간씩 말만 바꾸었을 뿐 모두 같은 것"이라며 "모두가 나에 대한 질문이다. 즉 내 마음에 대한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선원장인 철산스님의 눈에는 스님들의 공부가 결제 당시에 비해 많이 늘었을까. 요즘의 젊은 스님들의 공부 수준이나 진지함은 어떻게 보일까.

"나름대로는 다 집을 짓고 있지만 특출한 모습은 아직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공부가 돼도 표현을 안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예전 같으면 '그 정도면 됐다'라고 인정받을 수준일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깨달은 시늉을 할 수 있겠지만 몇 마디만 물어보면 금방 깊이가 들통납니다. 차(茶)를 맛보지 않은 사람에게 차 맛을 말로 전달하는 것이 쉬울까요. 기껏해야 5%, 10%나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로 전달된 차 맛을 실제로 그 차를 마셔본 사람이 듣는다면 전혀 엉뚱한 묘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또 "실제로 제대로 발심(發心)을 해서 오는 사람도 적다. 요즘 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정말 이것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출가하는 경우도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석가모니 생존시기에도 인도에서 우기를 피하기 위해 안거가 있었지만 오늘날 다른 나라 불교에는 찾아보기 힘든 안거 전통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여름, 겨울 안거로 뿌리내렸다. 이번 여름안거에는 전국 95개 선원에서 스님 2천237명이 정진했다.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을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내세우는 조계종에서는 안거를 간화선의 정수로 내세우지만 요즘 들어 간화선이 좌복(참선할 때 쓰는 방석)에만 머물러 있어 일반인과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조계종 내부에서도 일고, 어려운 간화선 대신 다른 수행법을 찾아나서는 불자들도 늘고 있다.

철산스님은 이에 대해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이 곳에서는 이 곳대로 하면 된다"며 "선원문화를 개혁하고 일반인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행자들을 품는 가난한 절인 대승사는 몇년 전부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금우문화재단을 만들어 문경읍에서 일주일에 약 300명을 대상으로 차도 등을 가르친다.

가마를 운영하면서 철산스님이 직접 도자기를 굽고, 도라지, 장뇌삼, 죽염, 된장, 표고버섯 등을 직접 재배하고 만들어 스님들을 뒷바라지하고 대중에게 보시한다.

대승사 대승선원의 이날 하안거 해제에는 인근 보현암에서 스님들과 똑같은 일정으로 하안거에 들었던 재가불자 7명도 함께했다.

일산에서 온 불자 박종철(68)씨는 "몸의 건강을 위해 시작한 안거로 마음의 평화까지 얻었다"고 했고, 웬만한 대중선원은 다 다니며 안거를 해왔다는 인천의 변모(46)보살은 "다른사람과의 관계를 원만히하고 자기수행을 하는데 안거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chae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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