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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칼럼> 누명 벗는 '간첩' 조봉암

송고시간2009-07-29 14:19

조봉암 사건 재판법정
조봉암 사건 재판법정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논설위원 = "뭘 그렇게 노여워들 하시오. 한 사람이 죽어야 한 사람이 사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 박사가 절대로 나를 살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가더라도 내 구명운동을 절대 하지 마세요."

죽산 조봉암은 자신과 함께 간첩 혐의로 연루됐다가 무죄로 풀려나는 진보당 인사들에게 처형 하루 전에 이렇게 당부한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내 나이 딱 환갑입니다. 병으로 죽은 사람, 자동차에 치여 죽은 사람도 많은데 평화통일운동하다 이렇게 떳떳이 죽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러면서 예수가 빌라도 법정에 섰을 때의 성경 구절을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누가복음 제23장이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를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라 한대 저희는 큰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조봉암은 자신의 예상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사형선고 재심청구가 기각된 지 하루 만이었다. 사형은 1959년 7월 31일 오전 11시에 집행됐다. 하지만 그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이승만정권은 이튿날 "조봉암ㆍ양면산은 북한괴뢰를 위하여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한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인 범증(犯證)에 의해 처단되었다"며 "그의 행적 등 모든 기사는 민심을 자극시킬 뿐 아니라 적을 이롭게 할 결과가 될 것이니 일절 보도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치안국장 명의로 언론사에 보냈다.

오는 31일로 그가 처형된 지 꼭 50년이 된다. 이를 하루 앞두고 여야 의원과 학계ㆍ사회 원로들이 조봉암 선생의 재심 개시 결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디어법 등으로 팽팽히 대치 중인 상태에서 여야 의원 80여 명이 모처럼 목소리를 합친 것이기도 해 의미가 적지 않다.

국회에서 열린 조봉암 선생 50주기 토론회
국회에서 열린 조봉암 선생 50주기 토론회

'간첩 조봉암'의 누명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그의 사형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구제 및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했다.

조봉암 선생이 누명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대법원의 재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과거사위 권고 뒤 유족들은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는데, 아직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학계는 물론 정계도 그가 억울한 정치탄압을 받아 희생됐다는 쪽으로 결론을 모아가고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눈엣가시같은 정적을 제거키 위해 '간첩' 굴레를 뒤집어 씌웠고, 조봉암은 끝내 사형이 확정됐다.

변호인단은 한때 그의 정치적 구명 가능성을 검토했다. 조봉암이 전과를 뉘우치고 이승만에게 충성을 다짐한다는 성명을 내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조봉암은 "나는 비록 법 앞에 죽음의 몸이 되었다고 하여도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은 스스로 의심할 수 없다"며 타협을 거부한다.

선생의 재심 개시 결정 촉구성명 발표를 목전에 둔 28일,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이 당시 보안사가 조작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거사위는 문학평론가 임헌영, 소설가 이호철 씨 등이 연루된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은 조작된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조치를 권고했다. 성격이나 과정이 조봉암 사건과 상당히 닮았다.

남북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였고 지금도 상호대치하고 있어 체제와 이념은 여전히 무척 예민한 문제다. 그런 만큼 악용의 소지도 있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에 정권유지와 국면전환용 등으로 이용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7년에 무죄판결이 내려진 소위 '인혁당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국가체제와 사회안녕을 위해 법질서가 확립돼야 함은 당연하다. 다만 정권의 안위 등을 목적으로 조작ㆍ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봉암 사건이나 문인간첩단 사건, 인혁당 사건 등은 구시대의 아픈 상처이자 어두운 그림자로 사라져야 한다. 다양성이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볼 때 견해차는 인정되고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일사불란(一絲不亂)이 아닌 다사불란(多絲不亂)을 지향한다.

조봉암 선생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50년 세월이 흐른 이 시대에도 되새겨볼 만하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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