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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마공신 김만일 묘역 제주 문화재 된다>

<헌마공신 김만일 묘역 제주 문화재 된다>

(제주=연합뉴스) 김승범 기자 = 조선시대에 제주도에서 말을 1만마리까지 기르며 국가가 필요할 때마다 헌납했던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1550∼1632)의 묘역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다.

제주도 문화재위원회는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있는 김만일의 묘가 17세기 제주분묘의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기념물로 지정키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외곽을 두른 산담(묘담)의 규모가 동서 9.3m, 남북 13.3m인 그의 묘는 직경 5.4m, 높이 1.5m의 원형봉토분으로 조성돼 긴 축의 직경이 3m 내외인 일반적인 민묘보다 그 규모가 매우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

김만일은 몽골족의 원나라가 고려 충열왕 2년(1276년) 제주도에 목마장을 설치한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말을 사육했던 손꼽히는 부자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도내 전체 목장에서 사육하는 말의 절반 가량인 수천에서 1만여마리를 사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그는 임진왜란 때인 선조 27년(1594년)과 왜란 직후인 선조 33년, 광해군 12년(1620년), 인조 5년(1627년) 등 4차례에 걸쳐 240마리부터 500마리까지 모두 1천300마리가 넘는 말을 조정에 바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이 공로로 선조 때 종2품인 가선대부(嘉善大夫)와 정2품인 자헌대부(資憲大夫)를, 인조 6년에는 지금의 부총리급인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제수됐다.

그의 후손들은 200여년 동안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을 역임하며 말 사육에 힘을 쏟아 제주마 육성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조정에 올라가는 공마(貢馬)의 수송 기록을 보면 그의 말 헌납에 따른 수송작전은 대단한 일이었다.

선박 1척당 30마리 내외의 말을 실은 배가 순풍일 때는 2-4일, 그렇지 못했을 때는 5-10일간 항해해 전남의 강진이나 해남, 진도 등지에 다다랐으며, 제주에서 한양까지 수송하는데는 1-2개월이 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제주의 선인들은 말을 농경에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활용해왔다.

도민들은 화산회토로 이뤄진 농경지에 말을 풀어놓아 파종한 씨앗들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토양에 파묻히도록 밟는 데 활용했으며, 소를 활용하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밭을 갈거나 연자방아를 돌리는 데도 다양하게 이용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말 도살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질 정도로 말고기의 식용이 유행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말고기 육포가 진상품이 되기도 했다.

ksb@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9/07/20 17: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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