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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유가족 "이 슬픔 어찌 잊겠습니까"

송고시간2009-06-30 18:07

동해 찾은 씨랜드 참사 유가족
동해 찾은 씨랜드 참사 유가족

(강릉=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참사 10주기를 맞은 30일 오후 당시 사고로 숨진 아이들의 유해가 뿌려진 강릉 주문진 앞바다를 찾은 유가족들이 국화를 바다 위에 던지며 아이들의 넋을 위로 하고 있다. 2009.6.30
momo@yna.co.kr

(강릉=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내가 죽어야 이 슬픔이 사라지겠지요. 지금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0일 오후 3시30분께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 도착한 씨랜드 참사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출렁이는 바다만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10년 전 아이들의 유해를 뿌렸던 현장을 찾아가는 어업지도선의 뱃머리에 앉은 한 유가족은 배가 이동하는 30분 동안 내내 굵은 눈물을 쏟아내며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이날 주문진 앞바다를 찾은 유가족들은 모두 26명, 이 가운데는 사고 이후 탄생한 어린이 6명도 함께 했다.

서울서 추모식을 끝내고 버스 편으로 주문진 항에 도착한 이들은 강원도환동해출장소의 어업지도선에 올라 10년 전 8월 8일 새벽 아이들의 유해를 뿌렸던 현장으로 향했다.

영상 기사 씨랜드 유가족 "이 슬픔 어찌 잊겠습니까"
(강릉=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내가 죽어야 이 슬픔이 사라지겠지요. 지금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0일 오후 3시30분께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 도착한 씨랜드 참사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출렁이는 바다만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10년 전 아이들의 유해를 뿌렸던 현장을 찾아가는 어업지도선의 뱃머리에 앉은 한 유가족은 배가 이동하는 30분 동안 내내 굵은 눈물을 쏟아내며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이날 주문진 앞바다를 찾은 유가족들은 모두 26명, 이 가운데는 사고 이후 탄생한 어린이 6명도 함께 했다.
서울서 추모식을 끝내고 버스 편으로 주문진 항에 도착한 이들은 강원도환동해출장소의 어업지도선에 올라 10년 전 8월 8일 새벽 아이들의 유해를 뿌렸던 현장으로 향했다.
비바람에다 강한 파도까지 몰아쳤던 10년 전의 그날과는 달리 사고발생 10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이 현장을 찾아가는 이날 바다는 온순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온 사방을 자욱하게 덮은 짙은 바다 안개는 유족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만 했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현장.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준비해온 국화 한 송이씩을 바다에 던지고 슬픔을 달랬다.
사고 이후 태어난 막내 형조(8) 군과 함께 현장을 찾은 권용환(46) 씨는 "아들을 잃고 지난 10년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며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사고로 받은 충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씨는 "충격을 받을까봐 형조에게는 형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때문에 형조는 가족사진에 찍힌 똑같은 모습의 형을 자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청훈(60)씨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우리 아이들이 사고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momo@yna.co.kr
<촬영,편집: 이태영 VJ(강원취재본부)>

씨랜드 유가족 "이 슬픔 어찌 잊겠습니까" (강릉=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내가 죽어야 이 슬픔이 사라지겠지요. 지금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0일 오후 3시30분께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 도착한 씨랜드 참사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출렁이는 바다만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10년 전 아이들의 유해를 뿌렸던 현장을 찾아가는 어업지도선의 뱃머리에 앉은 한 유가족은 배가 이동하는 30분 동안 내내 굵은 눈물을 쏟아내며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이날 주문진 앞바다를 찾은 유가족들은 모두 26명, 이 가운데는 사고 이후 탄생한 어린이 6명도 함께 했다. 서울서 추모식을 끝내고 버스 편으로 주문진 항에 도착한 이들은 강원도환동해출장소의 어업지도선에 올라 10년 전 8월 8일 새벽 아이들의 유해를 뿌렸던 현장으로 향했다. 비바람에다 강한 파도까지 몰아쳤던 10년 전의 그날과는 달리 사고발생 10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이 현장을 찾아가는 이날 바다는 온순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온 사방을 자욱하게 덮은 짙은 바다 안개는 유족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만 했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현장.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준비해온 국화 한 송이씩을 바다에 던지고 슬픔을 달랬다. 사고 이후 태어난 막내 형조(8) 군과 함께 현장을 찾은 권용환(46) 씨는 "아들을 잃고 지난 10년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며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사고로 받은 충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씨는 "충격을 받을까봐 형조에게는 형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때문에 형조는 가족사진에 찍힌 똑같은 모습의 형을 자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청훈(60)씨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우리 아이들이 사고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momo@yna.co.kr <촬영,편집: 이태영 VJ(강원취재본부)>

비바람에다 강한 파도까지 몰아쳤던 10년 전의 그날과는 달리 사고발생 10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이 현장을 찾아가는 이날 바다는 온순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온 사방을 자욱하게 덮은 짙은 바다 안개는 유족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만 했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현장.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준비해온 국화 한 송이씩을 바다에 던지고 슬픔을 달랬다.

사고 이후 태어난 막내 형조(8) 군과 함께 현장을 찾은 권용환(46) 씨는 "아들을 잃고 지난 10년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며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사고로 받은 충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씨는 "충격을 받을까봐 형조에게는 형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때문에 형조는 가족사진에 찍힌 똑같은 모습의 형을 자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청훈(60)씨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우리 아이들이 사고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mom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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