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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시위참가 "협박"도 있었다

송고시간2009-03-20 17:39

<3.1운동에 시위참가 "협박"도 있었다>
천정환 교수 '민중 탄생'론 반박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독립을 기치로 내걸고 온 겨레가 분연히 일어선 3.1운동은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멸망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제를 요구한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라는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 마쓰오 다카요시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의 놀라움이나 "계급, 지역, 종교를 초월해 온 겨레가 일으킨 최초의 '혁명'"이라는 이만열 전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분석은 모두 3.1운동에 담긴 '변화'와 '경이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지배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등장시키고, 민주 공화정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3.1운동은 역사적인 근대화 운동이자 민족운동이라는 시각이 이미 주류 사학계의 일반론이 돼 있다.

하지만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3.1운동에 그처럼 극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이면에 어두운 구석도 일정 부분 존재한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20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3.1운동 90주년기념 국내전문가 집중토론회'에서 발제문 '소문(所聞)ㆍ방문(訪問)ㆍ신문(新聞)ㆍ격문(檄文): 3.1운동 시기의 미디어와 주체성'을 통해 3.1운동 당시 일부 지식인들이 무식했던 일반 민중에게 시위에 참가하라고 협박한 사실을 주목했다. 그는 당시 재판 기록을 보면 기소된 피고인 중 '무식자'(無識者)들은 "'유식자'의 선동에 의해 (시위에) 참가했다고 진술"했으며, 유식자들의 선동은 때로 "'만세를 안 부르면 밟아 죽인다', '집을 불태워버리겠다'는 협박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협박은 주로 마을의 '유지' 등 식자층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그 대상은 특히 '무식한' 민중이었다 할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정치적 무책임의 세계에 살던 민중은 아직 '민족'으로도 '민중'으로도 형성돼 있지 않았던 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3.1운동의 민중 탄생' 담론을 반박했다.

천 교수는 이 같은 사실들이 "거대한 적과 맞서야 하는 '운동'의 조급함이 언제나 불러일으키는 '잡음'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 "협박은 연대나 접속이 아니라 무조건 동원 또는 탈접속"이라는 점에서 3.1운동을 통해 민중이 탄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에둘러 지적했다.

천 교수는 또 최남선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와 관련, "추상적인 내용과 극도로 현학적이며 고식적인 문체, 그리고 완벽한(?) 한주국종(漢主國從) 표기법"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하면서 "이 선언서로 과연 어떻게 민중을 조직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허영란 울산대 교수는 '3.1운동의 지역성과 집단적 주체의 형성'을 통해 경기도 안성지역의 운동을 살펴보면서 "비록 일시적이고 즉흥적이라 하더라도, 3.1운동은 민중이 '민족'이라는 단위를 현실의 실체로서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동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한국 근대국가형성과 3.1운동'에서 군주제를 없앤 건 일제 식민지 권력이지만 그 "의식체계마저 종지부를 찍게 만든 것은 3.1운동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해방기 연극, 기념과 기억의 정치적 퍼포먼스'(양근애.서울대), '3.1운동의 민족대표와 종교의 의미'(장석만.한국종교문화연구소), '유관순 표상의 창출과 전승'(정종현.동국대), '냉전의 신체 조형술과 1919.3.1'(권명아.동아대) 등 모두 14편의 논문이 2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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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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