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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축구> `양지팀' 대선배들의 따끔한 충고

<월드컵축구> `양지팀' 대선배들의 따끔한 충고 - 0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축구 여건은 예전보다 나아지고 수준도 높아졌지만 선수들의 투지나 정신력은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아"

22일 국제축구연맹(FIFA) 대회로는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 남북대결에 뜻깊은 손님들이 찾았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최종전인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본부석 오른쪽 2층 상단에 자리를 잡은 스카이박스 S-14실.

이곳에는 냉전시대였던 1960년대 `비운의 팀'으로 남아있는 양지축구단 출신 원로 축구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양지팀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북한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 기적에 자극을 받아 1967년 1월에 창단했던 팀.

이 팀에는 `원조 스트라이커' 이회택(63)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프로축구 통산 200승에 빛나는 김호(64) 대전 시티즌 감독, 명장으로 꼽히는 김정남(65) 울산 현대 감독 등 내로라하는 왕년의 스타들이 함께 뛰었지만 1970년 3월 3년여 만에 해체됐다.

하나은행 초청으로 자리를 함께 한 멤버는 당시 양지팀 코치였던 강준영 옹을 비롯해 이세연, 조정수, 이호영, 정병탁, 오인복, 김호엽, 이영근씨 등 11명.

이회택 부회장은 본부석에서 축구협회 임원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봤다.

남북이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한 상태에서 경기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지만 투지와 골 결정력 부족은 대선배들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했다.

강준영 옹은 "해방 직후에는 이북(북한)이 훨씬 잘했어. 이북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올랐지.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체육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축구도 덩달아 좋아졌지. 남한이 2002년에는 4강까지 올랐어. 이제는 경기 수준은 우리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이 수준은 높아졌지만 이를 악물고 뛰려는 정신은 부족한 것 같아. 또 이북에 대한 적대심도 적어지면서 꼭 이기려는 마음도 부족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당시 양지팀 골키퍼로 활약했던 오인복씨는 "양지팀이 만들어지기 전에 1966년 월드컵에 나가려고 효창운동장에서 훈련을 열심히 했는 데 북한 경기를 김용식 선생이 보고 온 뒤 대회에 불참했어. 처음 남북대결을 할 기회였는 데 너무 아쉬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아시아의 표범'으로 불렸던 이회택 부회장도 따끔한 충고를 빼놓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아쉬운 감은 있지만 남북이 최종예선이 올라갔으니 더욱 열심히 해 본선에 남북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하지만 결정적인 기회에서 해결해줄 게 없는 건 허정무 감독과 기술위원회가 더욱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조재진(전북)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뽑히지 않았고 박주영(서울)은 제 자리에서 뛰지 못했어. 전문 스트라이커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만남 자리에는 김호, 김정남 감독 등은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chil881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8/06/22 22:4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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