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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호랭이ㆍ용감한형제 "우리가 이끈다">

<신사동호랭이ㆍ용감한형제 "우리가 이끈다">
빅뱅ㆍ쥬얼리 등 트렌드주도 차세대 작곡가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신사동 호랭이', '용감한 형제'.

영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대중음악계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감각있는 차세대 작곡가들의 '필명'이다.

'신사동 호랭이'는 쥬얼리의 '원 모어 타임(One More Time)'을 편곡했고 '모두 다 쉿!'을 작곡했다. '용감한 형제'는 빅뱅의 '마지막 인사', 렉시의 '하늘 위로' 등 YG엔터테인먼트 히트곡의 일등공신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찌감치 꿈을 찾아 학업보다 음악을 선택했다는 점. 신사동 호랭이는 SM과 YG의 문을 두드리며 아이돌 가수의 꿈을 키웠고, 친형제 사이인 용감한 형제는 갱스터 힙합 듀오 지망생이었다.

독특한 필명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들이 최근 서울 강남에 마련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했다. 모두 언론과는 첫 인터뷰를 가진 이들은 하나같이 "나는 운 좋은 남자"라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 꿈꾼 '신사동 호랭이'

신사동 호랭이(본명 이호양ㆍ25)의 고향은 포항.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초등학교 시절 전남 광양으로 이사했고 중학교 시절부터 몰래 밤 업소를 다니며 드럼을 배웠다.

"광양제철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방학 때마다 서울로 올라와 SM과 YG의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다 떨어졌죠. 고집을 부려 서울 보성고등학교로 전학왔고 졸업 후에는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기 위해 사채업자들이 쓰는 사무실 한켠을 빌려쓰며 나이트 클럽 DJ로 취직했어요."

그는 고교 졸업 후 아이돌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클럽 DJ, 행사 진행자, 찜닭집 주방일, 노점에서 그림을 팔며 밑바닥 생활부터 경험했다. 고집으로 상경한 만큼 집안의 경제적인 지원도 끊긴 탓.

그러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에서 프로듀싱 기회를 잡았고 2004년 당시 김건모, 왁스, 자두 등이 소속된 제이엔터컴을 찾아가 작곡가 최준영 밑에서 '막내' 생활을 시작했다.

"작곡가 막내들은 원래 잡다한 일을 많이 해요. 청소는 기본이고, 때론 과일도 깎죠. 자두의 '놀자' 뮤직비디오에선 도라에몽 의상을 입고 뮤직비디오 출연도 했어요. 하하. 2005년 자두의 4집에 '남과 여'란 노래로 처음 프로 데뷔를 했고, 이후 왁스의 콘서트 곡 리믹스를 하며 편곡 연습을 많이 했죠."

장우혁의 1, 2집에 참여하며 가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휘성, 이효리, 김동완, 이루, 쥬얼리, MC몽의 음반에 작사, 작곡, 편곡자로 참여했고 최근 길건의 타이틀곡 '태양의 노래'도 만들었다.

요즘은 작곡가 박근태와 함께 휘성의 새 음반을 작업중이고, 김종국, 별 등의 음반에도 참여한다.

처음 저작권료로 받은 금액은 460원. '저작권료만으로는 못 사는구나'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다. 또 자주 찾던 동대문에서 새벽 쇼핑 중 자신의 음악이 흘러나와 소리치고 싶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이제 작곡가 이채규, 전군과 함께 공동 작업실을 마련할 정도로 경제적인 시름은 덜었다. "휴대전화 연결음으로 아들의 곡을 해뒀더니 직장에서 '센스 짱인 상사'란 평을 들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효도한 기분도 맛봤다.

그는 "요즘은 시장이 불황인 탓에 제작자들의 요구 사항이 더 많아졌다"며 "원하는 스타일에 맞추면서도 편곡 때 독특한 소스를 많이 써 새로운 느낌을 주려한다. 해외 음악가가 들어도 '사운드 편곡을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게 여길,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밝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왜 신사동 호랭이냐고요? 서울에서 가장 부자 동네가 신사동이라고 생각했고, 고향 친구들은 호양이란 제 이름에서 따와 호랭이란 별명을 붙여줬죠. 그래서 신사동 호랭이예요."

◇갱스터 힙합 마니아 '용감한 형제'

YG 전속 작곡가에서 3개월 전 독립한 용감한 형제는 강흑철(31), 강동철(29) 형제다. 둘은 7년 전 갱스터 힙합듀오 용감한 형제로 데뷔하려고 데모 음악을 들고 YG를 찾았다.

그러나 양현석 대표는 강동철이 쓴 렉시의 '눈물 씻고 화장하고'를 듣고 작곡과 편곡 실력에 반해 프로듀서로의 전향을 권유했다.

사실 용감한 형제로 내놓은 히트작은 모두 강동철의 작품.

빅뱅의 '마지막 인사'와 '바보', 렉시의 '하늘 위로', 거미의 '거울을 보다가', 무가당의 '오에오'에 이어 독립 후에는 손담비의 '배드 보이(Bad Boy)', 배틀의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을 썼다. 형은 블랙 소울이란 필명으로 배틀의 새 음반에 '러브 유(Luv U)'를 처음 수록했다.

혼자 인터뷰에 응한 강동철은 "갱스터 힙합에 젖어있을 때 사회를 향한 불만, 연예인에 대한 비판을 서슴없이 한 데모 음악을 만들었고 '절대 용감하지 않으면 발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용감한 형제로 이름 붙였다"고 말했다. 독립 후 차린 회사도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다.

"서라벌고등학교 입학식만 가고 자퇴했어요. 공부가 싫었죠. 싸움도 많이 했고 성격도 우락부락했어요.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클럽에서 DJ를 관리하는 이사로 일하며 사이프레스 힐, 투팩의 음악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클럽 일을 때려친 후 스무살에 처음 마스터 건반, 시퀀스 프로그램을 구입했어요."

비트 찍는 법을 가르쳐주던 형이 갑자기 군입대를 하자 그는 독학을 했다. 면회를 갈 때마다 곡을 건넸고 형이 가사를 붙여주면 홀로 녹음했다. 이 음악을 들고 양 대표를 찾아갔던 것.

"YG에서 많은 걸 배우고 나왔다"는 그는 "난 시대를 잘 만나 음악을 하고 있다. 내 음악은 힙합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음악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대세인 일렉트로닉도 국내에서 각광받지 못한 장르였어요. 랩을 넣어 대중적으로 잘 전달하려고 노력하니 자연스레 트렌드가 됐죠. 다른 장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제작자들의 곡 제의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달라진 점은 겁없이 사회 비판을 하던 무모함 대신 포용력이 생겼다는 것. 제작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니, 자유롭게 음악하는데 제약이 생겼지만 스스로 복에 겨운 소리라며 웃는다.

그는 현재 코끼리 왕국, 또라이 박 등의 후배 작곡가를 키우며 신인 여성그룹과 남성듀오의 곡 작업을 하고 있다. 향후 7월께 자신의 음악 색깔을 보여줄 솔로 싱글을 내고, 정규 음반 때는 형과 함께 노래할 예정이다.

"언젠가 유학도 가고 싶었요. 진짜 꿈요? 미국 팝 스타가 제 곡을 부르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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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작곡가 신사동 호랭이>

mim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8/06/10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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