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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송죽리 유적 17년만에 발굴보고서

송고시간2008-03-27 16:13

김천 송죽리 유적
김천 송죽리 유적

(서울=연합뉴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松竹里) 유적 4호 지석묘 인근에서 비파형 동검이 꽂힌 채 출토됐다. 1991년 조사 출토품이다. 그 발굴조사단인 계명대박물관이 최근 이 유적 발굴보고서를 완간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북 내륙지방에서 신석기시대 마을유적이 보고된 사례는 드물다. 그렇다고 이 무렵 한반도 남부지방 내륙에 사람들이 거의 거주하지 않았다고 하기도 힘들다.

한반도 남부 내륙의 정중앙쯤으로, 소백산맥 자락에 위치한 경북 김천시(당시는 금릉군) 구성면 송죽리(松竹里)에서 신석기시대 마을유적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천 송죽리 유적
김천 송죽리 유적

(서울=연합뉴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松竹里) 유적은 1991년 계명대박물관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취락 유적으로 밝혀졌다. 낙동강 지류인 감천이 휘돌아 가는 강변에 조성된 마을 유적이다. << 문화부 기사참조 >>

금릉군이 추진하는 '구성지방공단' 조성을 앞두고 1991년 여름 계명대박물관(당시 관장 김종철)이 이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와 청동시시대에 걸쳐 마을이 있던 곳으로 밝혀졌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주거지 10기와 야외 저장구덩이 및 야외조리장 등이 확인됐으며, 청동기시대 생활 흔적으로는 61기에 이르는 주거지와 19기의 고인돌묘가 발견됐다.

대전대 이한상 교수는 "송죽리 신석기시대 유적은 한국고고학계에서 남부 내륙지방 신석기시대를 논할 때면 그 대표 유적으로 거론할 정도로 중요한 곳으로 평가된다"면서 "더불어 청동기시대 유적 또한 이른바 송국리형 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주거지가 다수를 점하고, 나아가 비파형동검 2자루가 출토됐다는 점 등에서 신석기시대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 유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처럼 중요한 유적이지만 지금까지 공식 발굴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일반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고고학계 내부에서도 그 활용에 애로가 많았다.

하지만 계명대박물관이 최근 발굴조사 보고서 발간 작업에 박차를 가해 송죽리 유적 발굴성과를 2권짜리 방대한 보고서로 완결해 냈다. 2006년에 신석기시대 조사성과만을 담은 '김천 송죽리 유적Ⅰ'에 이어 최근에는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을 정리한 제2편이 발간됐다.

김천 송죽리 유적
김천 송죽리 유적

(서울=연합뉴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松竹里) 유적 4호 지석묘 출토 비파형 동검. 1991년 이 유적을 발굴한 계명대박물관이 최근 송죽리 보고서를 완간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송죽리 유적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김 관장은 "신석기시대 후기 또는 말기에 해당하는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 시작을 알리는 무문토기로 이해되는 돌대문토기 및 그와 관련된 일괄유물이 한꺼번에 나옴으로써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환기 양상을 밝힐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곳 4호 고인돌묘 부근에서는 비파형동검이 땅에 꽂힌 채로 출토됨으로써 당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출토 목탄시료에 대한 탄소연대측정결과 기원전 1천270~900년 무렵이라는 연대가 검출됨으로써, 무문토기가 대표하는 한반도 청동기시대 시작을 현재와 같은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15세기까지 소급해야 한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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