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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 vs '대군의 척후'>

<'제국의 후예' vs '대군의 척후'>
경성방직ㆍ근대 자본주의 발전상 상반 조명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면방업체 경성방직은 일제시대 한국인 기업 중에서 가장 눈부시게 성장한 기업이었다.

1919년 25만엔의 자기자본과 직기(織機) 100대로 출범한 경성방직은 일제말에는 자기자본이 1천150만엔에 달하고 직기 1천120대와 방기(紡機) 3만200추를 보유한 최고의 한국인 회사로 성장했다.

경성방직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과 협력으로 성장한 '제국의 후예'인가, 아니면 시장경제와 근대 공업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과 학습능력을 보이며 이후 뒤따를 많은 한국 기업들의 길을 다져준 '대군의 척후(斥候)'인가.

경성방직과 창업자인 고창 김씨 일가를 통해 한국 근대 자본주의 발전상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살펴본 국내외 저자의 책이 한꺼번에 나왔다.

대표적인 한국학 연구자인 카터 J.에커트 하버드대 교수가 1991년에 발표한 '제국의 후예'(Offspring of Empire)는 식민지시대 일본인과 한국인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한 경성방직의 역사와 그것이 현대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소 직포업체로 출발한 경성방직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과 협력으로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까지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눈부신 발전과정에서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근대화의 기동력이 일본 제국주의에서 왔다고 보는 에커트의 견해는 당시 한국의 학계에서 주류였던 '내재적 발전론', 즉 조선 후기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자랐고 외부의 침략과 방해가 없었더라면 한국이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했으리라는 시각을 뒤집는 것이어서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식민지기 한국인 자본가 계급에 대한 최초의 본격 연구서인 이 책은 그러나 저자가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거나 미화했다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에커트 교수도 이를 의식해 번역판 서문에서 "이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변호한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출현을 연구한 것"이라며 "한국인 대다수가 느꼈던 일제 강점의 억압적 측면을 부인하거나 축소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일제가 1920년대에 한국인 엘리트와 더 협력하는 자본주의개발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 일본 제국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푸른역사. 528쪽. 2만8천원.

함께 출간된 '대군의 척후'는 '제국의 후예'의 역자이기도 한 주익종 서울신용평가정보 이사가 에커트 교수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 쓴 책이다.

역시 경성방직과 고창 김씨가인 김성수ㆍ김연수를 다루고 있으나 이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단련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에커트 교수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상호작용을 살펴본다고 하면서도 결국 일본 제국주의가 낳고 양육한 한국인 기업의 모습에 초점을 두는 시각상의 문제점을 노출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경성방직 등 한국의 1세대 기업들이 불굴의 의지와 도전, 갖가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 단련됐고 그 기업 및 기업가는 예속자본이나 친일파라고 폄훼돼서는 안되며 일제하에서의 기업적 훈련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적 대기업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경성방직 회계자료를 전면적으로 분석해 경성방직이 면방직업체로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다각적으로 밝히면서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이라는 요인만으로 단순화할 게 아니라고 말한다. 푸른역사. 432쪽. 2만4천원.

<'제국의 후예' vs '대군의 척후'> - 2

mihy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8/02/14 06: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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