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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아이오와 선택> 태풍 몰고온 허커비 누구인가

<美아이오와 선택> 태풍 몰고온 허커비 누구인가

(디모인<아이오와>=연합뉴스) 조복래 김재홍 특파원 =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의 신화를 창조한 공화당의 마이크 허커비는 누구인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무명인사였던 그가 경선 중반부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 최대경쟁자였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비롯,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이변을 연출하자 미 언론들은 허커비에 대한 인물 재조명에 나섰다.

뛰어난 유머감각과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침례교 목사인 허커비는 올해 52세로 이번 승리를 계기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에 대적할 공화당의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특히 반(反) 조지 부시 여론 때문에 한때 재집권을 포기할 정도였던 핵심 보수층에겐 구세주나 다름없는 인물로 부상했다.

보수층으로서는 두 번 이혼하고, 낙태와 동성애를 지지하는 줄리아니와 모르몬교 신자인 롬니를 좋아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반면 허커비는 낙태와 동성애, 총기규제를 강력히 반대하는 확실한 보수주의자다.

때문에 부시 대통령 재선의 최대기반이었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3개월여 전부터 허커비를 본격적으로 밀기 시작했다. 복음주의자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고(故) 제리 팔웰 목사의 아들 제리 주니어 팔웰은 지난해 11월 27일 허커비 지지를 공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허커비는 1955년 8월 24일 미국내 가장 가난한 주로 평가받는 아칸소주의 인구 1만명 소도시 호프(Hope)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고 콰치타 침례교 신학대와 남서 침례 신학대(석사)를 졸업했다. 한때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1993년부터 96년까지 아칸소주 부지사를 지낸 뒤 주지사 선거에 당선, 올해 1월 대선 출마를 위해 주지사직을 포기할 때까지 재직했다. 1974년 5월 부인 제닛 매케인과 결혼했고, 슬하에 아들 존 마크와 데이비드, 딸 사라 등 3명을 두고 있다.

한때 체중 136㎏의 거구였으나 2003년 당뇨병 진단을 받고 무려 54㎏을 감량했고, '나이프와 포크로 당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를 그만두라' 등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다.

서민집안 출신답게 "조상 대대로 고교 졸업자는 우리 집안에 내가 처음이고, 나의 삶은 미국인의 꿈을 대변한다"거나 "예수는 나의 러닝메이트"라는 튀는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는 백만장자 출신 주지사의 아들로 태어나 벤처 투자에 성공해 억만장자가 된 모르몬교 출신 롬니 후보를 겨냥한 의도된 발언이었다. 애초 아이오와에서 줄곧 1위를 달리던 롬니는 결국 허커비의 치밀한 선거전략에 밀려났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허커비는 여러 면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닮은 꼴이다. 같은 아칸소주 출신에다 대선 출마 직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는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것이 흡사하다.

게다가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공통점이다. 클린턴은 섹소폰을, 허커비는 기타를 잘 다룬다. 선거 유세과정에서 학교 밴드와 함께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공화당의 빌 클린턴'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cbr@yna.co.kr

jaeh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8/01/04 13:3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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