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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친일재산 환수 대상자들은 누구?>

<제3차 친일재산 환수 대상자들은 누구?>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22일 재산 국가귀속 결정을 내린 왕족 이해승 등은 지난 1∼2차 결정 때의 재산환수 대상자들보다 인지도는 낮지만 환수 재산규모는 훨씬 크다.

특히 이해승의 재산 중 환수 결정이 난 재산규모만 해도 시가로 318억4천306만9천원에 이르러 1∼2차 때 결정된 재산을 다 합한 것보다 많다.

왕족으로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이해승은 한일합병의 공로로 일제로부터 조선귀족 중 최고지위인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恩賜公債) 16만8천원을 수여받았다.

이해승은 1910년 11월 조선귀족을 대표해 도쿄(東京)로 건너가 일본 천황에게 작위수여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고 1914년 4월 일본 황태후가 사망하자 다시 도쿄로 건너가 참배하는 등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했다.

`을사5적' 중 한 명인 이지용은 1904년 외부대신으로 한일의정서에 조인하고 이듬해 내부대신으로 을사조약에 서명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권피탈 뒤 일제로부터 백작 작위와 은사공채 10만원을 수여받았고 이후 중추원 고문 등을 지냈다.

중추원 참의를 4차례나 지냈던 유정수는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과 다이쇼대례기념장, 쇼와대례기념장 등을 받았다.

지난 2차 결정에 이어 이번에도 재산환수 대상자인 민영휘는 일제로부터 받은 하사금과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은 일제시대 대표적인 `매판자본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민영휘는 한일합병의 공으로 자작 작위와 은사공채 5만원을 받았으며 한때 재산규모가 4천만원(현 시가 8천억여원)까지 이르러 `고금(古今) 몇 백년 내에 처음 보는 큰 부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민영휘는 2차 결정 당시 36필지 31만7천632㎡, 시가로 56억8천756만8천원(공시지가 39억9천612만5천원 상당)의 재산이 환수되기도 했다.

한편 1∼2차 국가귀속 결정에 포함됐던 송병준과 고희경 등 4명은 이번 3차 귀속 결정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했던 재산 일부를 환수하게 됐다.

이완용 내각에서 내부대신 등을 역임하며 매국행위를 한 송병준은 하사금 수령과 국유지 무상 대부를 통해 재산을 늘렸다.

궁내부대신을 맡았던 민병석은 7일 동안 아침 저녁으로 고종을 만나 한일합방을 종용해 고종의 `결단'을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고희경은 `정미7조약' 당시 탁지부 대신이었던 고영희의 장자로 자작 작위을 물려받은 뒤 백작으로 승작해 중추원 고문, 이왕직 왕세자부 사무관 등을 맡았으며 한창수는 한일합병 이후 중추원 찬의와 고문 등을 지냈다.

engin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7/11/22 14:1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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