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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노호 피랍에서 석방까지>

<마부노호 피랍에서 석방까지>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케냐 뭄바사항을 출발, 예멘으로 가던 탄자니아 선적 어선 마부노 1,2호의 선장 한석호씨 등 한국인 4명은 올 5월15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북동쪽으로 210마일 떨어진 해역에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해적들에 납치됐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국적의 동료 선원 20명과 함께였다.

피랍자들과의 교신은 사흘이 지나서 이뤄졌다. 피랍어선의 선장인 한석호씨는 한국시간 5월18일 오후 선주 안현수 씨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납치범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정부도 피랍자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5월18일 때마침 방한 중이던 버나드 멤베 탄자니아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탄자니아 선적인 마부노 1,2호와 선원들이 조기에 무사귀환할 수 있게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납치단체 측은 시간을 끌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듯 선원들을 모가디슈에서 북쪽으로 400 km 떨어진 작은 항구에 억류한 채 선주 등과의 대면협상을 미뤘다.

이후 전개된 납치단체와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해적들은 통상의 피랍사건때 요구하는 금액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측면에서 지원했지만 해적들은 터무니 없는 액수를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선주 측으로서도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피랍 선박의 선주는 지난해 소말리아 근해에서 피랍된 동원호 사건 때 같은 대기업(동원수산)이 아니라 개인 업자였기에 더욱 요구사항을 감당키가 어려웠던 것이다.

마부노 1,2호의 선주인 안현수(50)씨는 탄자니아에 KNG(코리아 앤드 글로벌)라는 현지법인을 세워 이들 배 두 척을 운영중이었다.

협상은 롤러 코스터를 탔다. 지난 7월19일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23명 피랍사건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소말리아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멀어진 8월 들어 협상은 속도를 냈다. 해적들이 요구조건을 낮추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타는 듯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적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8월말 아프간 피랍사태가 해결되고 여론의 관심이 소말리아 사건에 집중되면서 다시 요구조건을 높여 나갔다. 한국인 피랍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동정 여론을 조성, 정부를 압박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펴기도 했다.

급기야 선주 안씨는 석방 대가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고 정부는 "정부가 나서서 해적들의 불법적 범죄행위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은 해적들과의 협상도 협상이지만 한국 안에서 `정부가 비상 예산을 써서라도 피랍자 구출에 나서라'는 국민 여론에 `해적에게 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정부 당국의 고심이 깊어졌던 시기였다.

이런 와중에 전국해상노련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소말리아 피랍선원을 위한 시민모임'이 성금 3억여원을 모으기도 했다.

결국 국민적 관심 속에 소말리아 피랍사태는 피랍 174일 만인 4일 선주와 해적간의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석방조건과 정부의 지원 여부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아프간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국정원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jh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7/11/04 23:4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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