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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선비와 사무라이>

<닮은 듯 다른 선비와 사무라이>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사(士)'자는 조선에서는 선비를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를 가리켰다. 그러나 표기만 같을 뿐 선비와 사무라이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지닌 집단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펴냄)'는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선비와 사무라이의 개념을 비교한 책이다.

호사카 교수는 선비와 사무라이의 기원을 성리학에서 찾는다. 동아시아에서 전형적으로 문화가 전파되는 흐름을 생각할 때 사무라이가 선비로부터 그 정신의 상당부분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호사카 교수는 선비와 사무라이 사이의 간격은 사실 그다지 멀지 않다고 주장한다.

구 5천엔 권의 주인공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는 '무사는 주군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부모에 효도를 다해야 한다, 스스로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해야 한다' 등으로 무사도를 설명했다. 주어를 선비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다.

저자는 선비와 사무라이가 서로 닮게 된 계기는 바로 전쟁이었다고 설명한다. 임진왜란 당시 납치된 유학자들은 에도 막부의 실력자들에게 성리학을 전파했다.

에도 막부가 무인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70년이나 평화시대를 이룬 바탕에는 조선 성리학의 힘이 깔려있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둘의 차이도 적지 않다. 선비가 성리학을 심화ㆍ발전시킨 나머지 도가 지나칠 정도 매몰됐다면 사무라이는 손자병법을 생존을 위한 기본사상으로 삼고 성리학을 보조적으로 사용했다.

또 선비에게 인생 최대의 목표가 중앙에서 벼슬살이하는 것이었다면 사무라이는 영지를 얻고 성을 쌓아 일국 혹은 일성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저자는 닮은 듯 다른 선비와 사무라이의 비교를 통해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220쪽. 9천900원.

kind3@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7/06/26 17:0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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