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땅의 정직함을 배웁니다"
송고시간2006-06-28 11:05
서울대생 '농활 구슬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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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분들로부터 땀의 소중함과 땅의 정직함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28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중하마을 50여평의 비닐하우스에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고무신을 신었지만 반소매 밑으로 보이는 흰 팔뚝과 앳된 얼굴은 멀리서 봐도 한눈에 시골 농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른 팔뚝 만한 길이에 두 손바닥을 합친 만큼 널찍한 노란 담배잎을 엮고 있는 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농촌봉사활동을 나온 서울대학교 공과대 화학생물공학부와 컴퓨터학부의 재학생 들.
"할머니 이 담배잎을 어떻게 묶어야 해요?"
"엥~ 서울대핵교 학생이람서 그것도 몰는 당가... 외약손(왼손)으로 댐배 다발을 잡고 바른손(오른손)으로 댐배잎 끝을 노랑끈 사이로 잘 넣어야제"
공부에 관한 한 명실공히 최고인 서울대생이지만 담배잎을 묶고 논에서 '피'(잡초)를 뽑고 고추밭에 농약을 주는 농사일에는 그야말로 '낙제생'이라서 농민 송영자(68) 할머니에게는 탐탁치가 않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묶으며 꼼꼼히 답해주는 송 할머니는 "어제 하루종일 혼자 두 고랑에서 담배잎을 땄는데 오늘은 손자들이 도와줘 큰 고생을 덜었다"며 학생들을 대견해 하신다.
작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올해도 10여명의 농활대를 이끌며 하루 일과와 일감을 챙기는 이현우(21.컴퓨터학부 3년) 중하마을 농활대장은 "학생들은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는게 아니고 오히려 그분들로부터 성실함과 땀의 소중함, 뿌리만큼 거두는 땅의 정직함을 배운다"고 말했다.
농할대원들은 농민들에게 조금의 신세도 지지 않으려고 쌀과 밑반찬, 음료수 등을 손수 준비해왔지만 땡볕에 입에 단내가 나는 농사일 중간에 뜨끈해져버린 막걸리 한잔을 극구 권하는 시골인심까지는 차마 거절하지 못해 단숨에 들이킨다.
김민기(19.화학생물공학부)씨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너무 힘들지만 누군가를 도울수 있어 즐겁고 보람있다" 면서 "농부들을 만나 대화하며 그분들의 삶과 농촌생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삶의 체험 현장인 후텁지근한 고추밭과 메마른 논으로 달려가는 '왕초 보 농부'들은 도서관과 책에서 배울 수 없는 땀과 땅의 의미를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체득하고 있다.
k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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