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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세계청소년축구 남대식코치

"이겨야 한다는 신념의 결실" (리스본=聯合)權快鉉기자= "우리선수들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감수하고 꼭이겨야한다는 신념으로 뛰어준 덕분입니다"

코리아의 남대식코치는 외모답지않게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못했다.

남코치야 말로 이번대회에서 가장많은 노력을 한 사람중의 하나다.

때문에 그가 느끼는 감격 또한 남달리 큰지도 모른다.

지난해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겸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파견선발전에서 북한을 꺾고 아시아 1위로 본선티킷을 따낸 한국청소년대표팀의 남감독은 코리아팀의 탄생과 함께 남북회담의 합의에따라 코치로서 팀을 뒷바라지하는 일을 맡았다.

"그동안 소속팀(고려대)과 청소년대표팀에서 줄곧 감독으로서의 직무만 해오다가 갑자기 코리아팀의 코치역할을 맡으니 이상하기도 할 뿐더러 처음 안세욱감독의 축구스타일과 지도방법, 성격등이 맞지않아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남코치는 그동안의 어려움을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남북의 겨레가 자기에게 맡겨준 임무라는 생각을 하고 모든일을 안세욱감독에게 양보하고 세밀한 뒷바라지를 한 결과 지금은 북측임원들도 자신을 신뢰하고 코치라기보다는 같은 코칭스탭의 협조자로서 의견을 받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기용등에서도 초반 북측은 엄격한 비율을 적용해 왔으나 마지막경기에서 7-4로 남쪽선수에게 큰비중을 둔 것도 남코치의 노력때문이라고 주위사람들은 말하고있다.

무뚝뚝하고 자기의 생각을 밖으로 잘 표현은 않지만 생각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어떤방법을 동원해서든 관철하고야마는 집념을 갖고 있는 남코치는 코리아팀의 8강진출을 사실상 총지휘한 감독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군산남중시절 축구를 위해 동북중으로 옮겼고 동북고에서부터 재간을 인정받아 고3시절 청소년대표에 발탁됐던 남코치는 가정형편으로 인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못하고 양지팀에서 3개월,제일은행에서 1년의 유랑생활을 하다가 70년 고려대에 입학했다.

고교졸업시 랭킹1위로 지목될 정도로 슈팅과 볼감각이 뛰어났던 남코치는 대학1년때 벌써 국가대표2진인 백호에 들어갔고 이듬해 청룡팀으로 발탁됐다.

72년까지 비교적 짧은 대표선수생활을 하면서도 태표팀의 유명 미드필더이자 센터포드로 활약했던 그는 74년 국민은행에 들어가 79년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했고 선수생활을 끝내면서 국민은행코치가 됐으나 80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남대문지점대리로 일하기도 했다.

84년 10년만에 모교인 고려대로 돌아와 감독을 맡은 그는 지금까지 무려 8년동안 장수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전국대회에서 6차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군산중앙국교 1년선배인 김형숙씨(43)와 결혼 현재 1남3녀를 두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91/06/21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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